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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ku22022 님의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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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515 네로는 침대에서 일어나 헐떡이며 숨을 골랐다. 목덜미와 손바닥이 모두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이불에 끈적이는 손을 비벼 닦고는 눈을 느리게 끔뻑였다. 미지근한 액체가 이마와 뺨을 죽 지나쳐갔다. 숨은 아직 가쁜데, 벌써 꿈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미간을 구기고 생각을 해 보아도, 온갖 형상들이 머릿속에서 뒤섞여 점점 답이 흐렸다. 어지간한 꿈은 이제 시작부터 꿈이라는 걸 눈치채곤 하는데, 대체 무슨 꿈을 꾼 거지. 네로는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눈을 감는 대신 침대에서 내려와 탁자까지 걸을 마음을 먹었다. 찬물을 좀 마시면 진정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새벽 다섯 시를 조금 넘긴 시설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몸을 완전히 일으켰는데도 도저히 잠에서 깼다는 현실감이 없었다. 어둠에 익숙해.. 공감수 0 댓글수 0 2018. 5. 15.
  • 0425 팔꿈치 밑의 살에 손톱을 세우고 힘을 주자, 곧 그 부근에 짓눌린 자국이 남았다. 옷자락을 내리면 아슬아슬하게 감추어져 보이지 않을 위치였다. 압각을 흘려보내면서 시계를 눈짓하자 초침 바늘이 막 숫자 6 위를 미끄러지듯 흐르며 넘어가고 있었다. 어쨌든 두 시까지는 이제 고작 십여 분이 남았다. 네로는 초조하게 검지의 반창고를 만지작대다 그대로 떼어냈다. 다행히 쓸린 상처는 이제 붉은 기가 가셔서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티가 나지도 않았다. 손가락을 몇 번이나 돌려 확인한 후에야 네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에 먹은 진통제의 효과는 거의 떨어져가는 것 같은데, 부작용만 여전한지 어째 몸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가이딩이 잘 통하지 않는 체질은 불편했다. 사람의 도움을 받기 어려우니, 사소.. 공감수 0 댓글수 0 2018. 4. 25.
  • 0402 네 옆에 있을 때는 내가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네로는 푹신한 이불을 품으로 끌어당기면서 조금쯤 들뜬 목소리로 속닥거리다 어린애처럼 입을 벌려 웃었다. 평소처럼 깊게 생각하지 않고 뱉은 말이었다. 네로는 그게 뭐든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는 그럴 수 없었고, 요즘은 그러지 않았다. 머리에 담아둔 것들을 오래오래 씹어 헤아리기에는 몸에 정신이 묶이지 않은 생활이 너무도 가뿐했다. 어깨에 걸친 잠옷이 천과 부딪히며 사박거리는 소리를 냈다. 적당히 따스한 공기, 지난 밤 피웠던 향초의 옅은 꽃 냄새, 일정한 주기로 째깍이는 시계 소리가 모두 또렷이 느껴졌다. 머리가 맑았고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아마 몇 년 전에도 지내던 곳의 공기는 따듯했을 것이고, 창가에는 풀냄새가 났을 것이고, 시계는 기계장치.. 공감수 0 댓글수 0 2018. 4. 2.
  • N 공감수 0 댓글수 0 2018. 4. 2.
  • Exceptional 추위가 정점에 닿았다가, 이제 온기를 찾아 내려오는 계절이었다. 소렐라는 겨울이 사나운 지역은 아니었지만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는 이 정도의 추위로도 매년 확연한 겨울이 느껴지기 마련이었다. 네로는 깃털이 잔뜩 채워진 쿠션 위에 늘어진 채 마을에 나간 서약자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를 서약자라는 단어로 부를 수 있게 된 것도, 그 날 나눈 이야기도 아직 얼마 지나지 않은 새 것이었지만 한참 된 일마냥 익숙했다. 영원한 약속, 발 밑으로 늘어지는 그림자, 세상에서 서로만을 지칭하는 단어를 가지게 된 사이.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은 단어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규칙적으로 쥐고 있는 잔을 톡, 톡 두드렸다. 인간은 결코 영원을 만들 수 없는 존재라 여기던 시절도 있었는데. 안개의 도시에서의 기억을 돌.. 공감수 0 댓글수 0 2018. 4. 2.
  • Marble 저녁 식사를 하기에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바닷가 골목의 식당 안은 소란스러워 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어려웠다. 슬슬 식사를 끝낸 뒤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한 사람들이 섞여들었기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몰랐다. 그렇게 부옇게 번지는 주황색의 램프 불빛 아래의 바닥을 관찰하고 있으면, 수많은 그림자들이 얽혀 있는 와중에 한 테이블만이 유독 그늘 없이 허전했다. 손님 둘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땅에 발을 붙들린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 대륙에 사는 사람이라면 전부, 그 까닭을 믿지는 않더라도 알고는 있었다. 그렇기에 그것을 발견한 사람들의 입에 구석진 테이블의 일행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내리는 것도 금방이었다. 왁자지껄한 와중에도 수근대는 소리는 명백했고, 빠르게.. 공감수 0 댓글수 0 2018. 4. 2.
  • One of Eternity 데이모라에선 늘 얼굴에 닿는 바람이 짰다. 일 년 가까이 대륙을 걸었지만 마법진에 빌었던 소원을 시험할 날은 많지 않았다. 이 땅은 애매모호한 평화 위에 있었고 빛을 찾은 마법진 아래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상대에게 날것의 악의를 드러내는 사람은 적었다. 몸이 상할 일도 없고, 몇 달 안에 키가 크거나 얼굴이 변하는 것 역시 기대하기 힘든 일이니 소원의 연못에 비친 그림자가 현실이 된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이 싫지는 않았다. 애초에 영원은 시간 없이 증명되는 것이 아니니까. 가지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수천 년의 시간을 변하지 않은 채 건너 뛴다 해도 확신할 수 없는 것, 반대로 깨어질 때만은 찰나로 충분한 것. 이상이 현실에 겹쳐지기 힘든 이유도 항상 그 때문이라고 .. 공감수 0 댓글수 0 2017.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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