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옆에 있을 때는 내가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네로는 푹신한 이불을 품으로 끌어당기면서 조금쯤 들뜬 목소리로 속닥거리다 어린애처럼 입을 벌려 웃었다. 평소처럼 깊게 생각하지 않고 뱉은 말이었다. 네로는 그게 뭐든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는 그럴 수 없었고, 요즘은 그러지 않았다. 머리에 담아둔 것들을 오래오래 씹어 헤아리기에는 몸에 정신이 묶이지 않은 생활이 너무도 가뿐했다.
어깨에 걸친 잠옷이 천과 부딪히며 사박거리는 소리를 냈다. 적당히 따스한 공기, 지난 밤 피웠던 향초의 옅은 꽃 냄새, 일정한 주기로 째깍이는 시계 소리가 모두 또렷이 느껴졌다. 머리가 맑았고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아마 몇 년 전에도 지내던 곳의 공기는 따듯했을 것이고, 창가에는 풀냄새가 났을 것이고, 시계는 기계장치를 돌리며 소리를 냈을 것이다. 네로는 그 사실이 아주 이상했지만 왜인지 그게 당연한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센티넬의 힘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가이드라고 불러. 몇 번이고 들었던 수업의 내용이 잠깐 떠올랐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고, 그 뒤에는 어째서 길잡이의 이름을 통제자에게 붙였지, 하고 잠깐 의문을 가졌다. 센티넬에게 가이드를 배정하는 일의 주요한 목적은 분명 거기에 가까울텐데.
네로는 둥글둥글한 시야 너머로 상대의 얼굴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어두운 색의 머리카락이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잠기운이 스멀스멀 눈가로 다가왔다. 네로는 제르니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려 손을 뻗었다가 오히려 앞머리를 조금더 섞어놓고는, 작게 하품하며 눈을 감았다. 안내자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만약 자신이라면 다른 단어를 붙였을 것이다.
.....내일 오후에는 걸어서 삼십 분쯤 걸리는 곳의 디저트 전문점에 갈 예정이었다. 입 안에서 살금살금 녹아내릴 크림의 맛을 상상하면 잘 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금방 입에 침이 고였다. 네로는 흐려지는 정신을 구태여 붙잡는 대신 밤 인사를 웅얼거렸다. 방금 전까지 눈꺼풀 뒤를 빙글빙글 돌아다니던 단어도 같이 잠에 섞여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다시 기억하지 못할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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