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eptional

2018. 4. 2. 04:01



  추위가 정점에 닿았다가, 이제 온기를 찾아 내려오는 계절이었다. 소렐라는 겨울이 사나운 지역은 아니었지만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는 이 정도의 추위로도 매년 확연한 겨울이 느껴지기 마련이었다. 네로는 깃털이 잔뜩 채워진 쿠션 위에 늘어진 채 마을에 나간 서약자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를 서약자라는 단어로 부를 수 있게 된 것도, 그 날 나눈 이야기도 아직 얼마 지나지 않은 새 것이었지만 한참 된 일마냥 익숙했다. 영원한 약속, 발 밑으로 늘어지는 그림자, 세상에서 서로만을 지칭하는 단어를 가지게 된 사이.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은 단어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규칙적으로 쥐고 있는 잔을 톡, 톡 두드렸다. 인간은 결코 영원을 만들 수 없는 존재라 여기던 시절도 있었는데. 안개의 도시에서의 기억을 돌이키면서 네로는 약간 웃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관계에 의미를 두지 않고자 마음먹은 후에도 결국 내밀어진 약속을 붙잡았다. 그런 결정을 한 데에 자신의 욕망이 섞여들지 않았다고는 역시 말하기 어려웠다. 인간이 영원을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이, 또는 그걸 증명하는 것이 자신이었으면 하는 그런 욕심이... 당연히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오직 영원을 향한 집착이라고 하기에는 단어의 범위가 좁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단순한 삶을 살기에는 잃어버린 것이 많았다.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아닐지라도, 서약에 바라는 것은 꽤 많았다. 네로는 무심코 컵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안은 비어 있었다. 




  네로는 그 상태로 눈을 몇 번 깜빡이다, 어느 순간 해가 기울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무 바닥에 석양의 붉은 빛이 비쳤다. 낮을 점점 뒤로 밀어내는 계절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밤이 찾아오는 것이 더 빨랐다. 머리로 시간을 가늠하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곤 잔을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그림자가 머리만큼 발을 삐져나갔을 즈음 집을 떠났으니, 곧 제르니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마중을 나가기 전에 장갑을 집어들었다. 집 안에서 맨손으로 움직이는 것은 생긴지 얼마 되지 않는 버릇이었다. 만질만질한 천의 감촉을 무심코 쫓다 손을 한번에 쑥 집어넣었다. 바깥에서 오래 있었으니 분명 뺨이 발갛게 얼어서 돌아올 게 분명했다. 그러니 제 손은 따뜻한 쪽이 좋을 것 같았다. 




  쿠션을 적당히 정리해두곤, 곧 좁은 복도를 지나 현관문을 밀어 열었다. 건물에서 고작 한 걸음 벗어난 것만으로도 건조하고 서늘한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늘어지는 빛이 닿는 살갗에 온기가 머물면서도, 기묘하게 따듯하다는 감각이 없었다. 곧 멀리서 익숙한 그림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제 시간을 맞춰 나온 모양이었다. 네로는 그대로 신발의 끈을 묶고 천천히 나무 집을 둘러싼 울타리로 걸음을 옮겼다. 제르니는 들고 있는 것이 많아서인지, 비슷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서약한 날 이후로 상대의 발치를 쳐다보는 습관이 생기는 것은 아마 흔한 일이겠지. 무심한 신이 남겨준 서약의 증거가 눈에 들어오기를 기다리면서, 네로는 장갑을 낀 손으로 제 턱을 만지작거렸다. 시선은 다가오는 상대에게서 떼지 않은 채였다. 



  이 서약은 영원할 것이었다.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내가 영원하게 만들 테니까 결국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질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은 분명히 있었다. 얼굴을 확인할 거리가 되어서야 네로는 울타리 주변에서 가만히 서 있는 것을 그만두고 상대에게로 나아갔다. 누군가는 분명 이런 마음가짐을 이상으로, 비현실로 칭하겠지만. -모든 비현실은 늘 단 하나의 예외를 마주하는 것으로 현실이 됨으로. 


  네로는 충분히 가까워진 상대에게 손을 뻗기 전에, 장갑을 다시 벗었다. 밖에 있던 것이 오래는 아닌 탓에 아직 안쪽에는 살아있는 것의 온기가 잔뜩 남아있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추운 것 같던데.  뺨에 손을 가져다대기 직전에 한 말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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